1. 개요
자율주행 기능을 안전하게 출시하려면 얼마나 많은 테스트 주행이 필요할까요? 기존의 시험 주행 방식으로는 수십억 킬로미터에 달하는 주행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PEGASUS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나리오 기반 검증 방법론으로, 한정된 노력으로 자율주행 시스템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체계와 도구를 제시했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PEGASUS 방법론의 개념과 탄생 배경, 자율주행 검증의 핵심 과제와 PEGASUS의 해결 전략,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 체계와 시나리오 분류(Functional/Logical/Concrete), PEGASUS 툴체인과 자동화, 실제 적용 사례와 로드맵, 국제 안전 표준(ISO 21448 SOTIF, ISO 26262, ISO/PAS 8800 등)과의 연계, Euro NCAP·UNECE 등 글로벌 평가 기준과의 관계, 그리고 향후 발전 방향과 도전 과제를 정리하겠습니다.
2. PEGASUS 방법론의 개념과 탄생 배경
PEGASUS는 “Projekt zur Etablierung von allgemein akzeptierten Gütekriterien, Arbeitsweisen und Szenarien für die Umsetzung von Spitzenautomatisierten Fahrfunktionen”의 약자로, 영어로는 “Project for Establishing Generally Accepted quality criteria, tools and methods as well as Scenarios for highly automated driving systems” 정도로 해석됩니다. 2016년 1월부터 2019년 중반까지 약 3년 반에 걸쳐 진행된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i) 지원 연구 프로젝트로, 아우디, BMW, 다임러,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OEM과 보쉬, 콘티넨탈 등의 티어1, TÜV SÜD와 같은 시험인증 기관, 대학 및 연구소 등 총 17개 기관이 참여했습니다. 약 3,450만 유로 규모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도화된 자주행 (HAD) 기능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표준화된 시험방법과 품질 기준, 시나리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PEGASUS가 등장한 배경에는 자율주행 기술의 빠른 발전에 비해 검증 및 승인 절차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차량 기능안전 시험과 형식승인 체계만으로는 복잡한 자율주행 시스템의 안전을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고, 무작정 도로주행 시험만 거듭하기에는 경우의 수가 무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율주행차의 안전을 입증하려면 수십억 km에 달하는 주행 시험이 필요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며, 이는 시간과 비용 면에서 비현실적입니다. 따라서 PEGASUS 프로젝트 팀은 “어떻게 하면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자율주행 시스템의 성능을 입증할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답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고 통계 분석, 인간 운전자 성능 비교, 잠재 위험 시나리오 도출 등을 종합하여 안전성에 대한 논증 구조(safety argument)를 수립하고,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를 통해 “인간 운전자 대비 위험도가 낮은지(Positive Risk Balance)”를 입증하는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PEGASUS는 자율주행차가 해당 운행범위(ODD)에서 인간보다 안전하게 운전함을 시나리오 테스트로 증명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인 것입니다.
3. 자율주행 검증의 핵심 과제와 PEGASUS의 접근법
자율주행 시스템 검증의 핵심 난제는 “과연 얼마나 테스트해야 충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가”입니다. 일반 차량의 경우 ISO 26262 기능안전 기준 등에 따라 고장 모드별 테스트를 수행하지만, 자율주행에서는 고장이 없어도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센서 성능 한계나 인지 오차, 예기치 못한 환경 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의도된 기능상 안전(SOTIF)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시나리오를 얼마나 테스트해야 시스템의 안전을 신뢰할 수 있는가”가 핵심 문제입니다. PEGASUS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나리오 기반 접근법을 제안했습니다. 무작위 주행으로 막연히 거리를 누적하는 대신, 체계적으로 선별한 시나리오들을 가상·현실에서 테스트함으로써, 전체 위험도를 감소시키고 안전성을 입증하려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비용과 시간 내에 “테스트 해야 할 중요한 상황들”에 집중하여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특히 PEGASUS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직면할 모든 상황의 공간(시나리오 스페이스)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작업에 주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도로환경, 교통상황, 돌발조건 등을 계층화하여 모델링했는데, 이를 6계층 시나리오 모델(6-Layer Model)이라고 합니다. 이 6개 레이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 Layer 1: 도로 구조 (Road-level) – 도로 유형, 지형, 차선 구성 등 기본 도로 형태 (예: 직선 또는 곡선 고속도로, 1차로/3차로, 제한속도 100km/h 등)
- Layer 2: 교통 인프라 (Traffic infrastructure) – 신호, 표지판, 가드레일 등 도로 설비와 규칙 (예: 교통표지, 차선 규제, 신호등 상태 등)
- Layer 3: 임시 변화 요소 (Temporary modifications) – 공사 구간이나 사고 등 일시적 도로 환경 변화 (예: 도로 공사로 인한 차선 폐쇄, 행사로 인한 우회로 등)
- Layer 4: 객체(이동 물체) (Objects) – 자율주행 차량 이외의 동적인 객체들로 차량 또는 보행자 등 교통 참여자 (예: 앞서가는 트럭, 끼어드는 차량, 도로에 등장하는 보행자 등)
- Layer 5: 환경 조건 (Environment) – 날씨, 조도 등 환경적 조건 (예: 비오는 날 밤, 안개 끼인 이른 아침 등)
- Layer 6: 디지털 정보 (Digital information) – 차량 간 통신(V2X), 지도 정보 등 디지털 데이터 (예: 실시간 교통정보, 정밀지도 상의 도로 속성 등)
이 6계층 모델을 활용하면 복잡한 주행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분류·결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ayer1 과 3의 정적인 요소(도로/인프라/임시변화)는 특정 ODD(운행설계영역)에 한정하고, Layer5 와 6의 환경 요소도 그 범위 내로 한정하면, 남는 것은 Layer4의 동적 객체 조합입니다. PEGASUS에서는 “논리적 시나리오(Logical Scenario)” 개념을 도입하여, Layer 4의 동적 이벤트 조합을 대표적인 몇 가지 기본 구성(예: 차량 끼어들기, 느린 차 추월, 전방 차량 급정지 등)으로 분해하고 각각에 대해 나머지 레이어 조건들을 변수화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때 각 논리적 시나리오는 자율주행 차량(시험 차량)과 주변 객체들 간의 잠재 충돌 상황을 가정하고 (예: 시험 차량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해당 상황에서 시험 차량이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핵심 상황”별로 테스트를 분해함으로써, 사실상 전체 시나리오 공간을 가상 시나리오 세트로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 PEGASUS 팀의 접근입니다. 요컨대, PEGASUS는 방대한 시나리오 공간을 논리적 시나리오 단위로 쪼개어 관리하고, 각 논리적 시나리오에서 다양한 매개변수 조합(속도, 거리, 날씨 등)을 시험함으로써 테스트 커버리지를 확보하는 전략을 제시한 것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시나리오의 추상화 수준입니다. PEGASUS는 시나리오를 기능적 시나리오(Functional / Abstract), 논리적 시나리오(Logical), 콘크리트 시나리오(Concrete)의 3단계로 분류합니다. 이 개념은 ISO 21448(SOTIF) 등 이후의 표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각 단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능적 시나리오: 자연어 등으로 기술된 추상적 시나리오 서술입니다. 도로 형태, 참여 객체, 상황 전개 등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상황 서술으로, 예를 들어 “3차로 고속도로 곡선구간에서 시속 100km로 주행 중인 자율차 앞으로 오른쪽 차로에서 트럭이 끼어든다”와 같은 시나리오 서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상황을 정의한 것이 기능적 시나리오입니다.
- 논리적 시나리오: 기능적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매개변수(Parameter)화하여 범위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도로 곡률은 얼마얼마, 상대 차량 속도는 얼마얼마, 초기 거리 간격은 얼마~얼마 등의 조건 범위와 변수 유형을 정의하여 시나리오 클래스를 만든 것입니다. 논리적 시나리오는 하나의 기능적 시나리오에 대해 무수한 구체 시나리오의 집합(범주)을 나타내며, 테스트 케이스 생성의 틀 역할을 합니다.
- 콘크리트 시나리오: 논리적 시나리오에서 각 매개변수 값을 구체적인 수치로 확정한 개별 시나리오 인스턴스입니다. 예를 들어 기능적 시나리오가 “트럭 끼어들기”이고, 논리적 시나리오로 “속도 차이 2040km/h, 초기 간격 3050m ...” 등이 정의됐다면, “트럭: 80km/h, 자차: 100km/h, 간격 40m, 날씨: 맑음” 등이 바로 콘크리트 시나리오입니다. 이는 실제 시뮬레이션이나 테스트트랙에서 실행 가능한 테스트 케이스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추상화 계층을 활용하면, 자율주행 시스템의 테스트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도메인 전문가들이 기능적 시나리오 목록을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변수와 범위를 지정해 논리적 시나리오 카탈로그를 구성한 뒤, 마지막으로 랜덤 혹은 계획된 방법으로 개별 콘크리트 시나리오를 생성하여 테스트에 활용합니다.
PEGASUS 프로젝트에서는 실제로 시나리오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각 기능적 시나리오를 OpenScenario, OpenDRIVE 형식 등으로 자동 변환하여 수만 건의 콘크리트 시나리오 파일을 생성하는 작업도 수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생성된 시나리오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시험을 하거나, 필요한 경우 시험장(Proving Ground)에서 재현하여 시험함으로써, 가상의 결과와 현실 실험 결과를 함께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테스트 전략을 취했습니다. TÜV SÜD 등 프로젝트 참여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을 통해 “완전 자율주행 기능 하나를 승인하려면 1억 가지 이상의 시나리오를 테스트해야 한다”는 도전적인 목표도 달성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시나리오를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수는 없기에, 대부분은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고 대표 위험 시나리오만 선별하여 실제 시험함으로써 효율화합니다.
요약하면 PEGASUS 방법론은 “시나리오”라는 단위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시스템 검증 프로세스 전체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방대한 잠재 상황을 6개 층으로 구조화하고, 기능적→논리적→콘크리트의 계층으로 관리하며, 가상·현실 테스트를 결합하여 체계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검증을 수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4. PEGASUS 방법론의 구성 요소: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 체계와 품질 기준
PEGASUS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 시나리오 분석 및 품질 측정 (SP1) – 어떤 시나리오를 테스트해야 하는지, 얼마나 테스트해야 충분한지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연구합니다. ODD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 데이터 분석, 인간 운전자 한계 성능 측정, 자동화 시스템의 어려운 상황(Automation Challenges) 규명, 안전 기준(metric) 정립 등이 여기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GIDAS 사고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여 고속도로 ODD에서 발생한 사고 시나리오를 추출하고, 시뮬레이터 실험으로 인간 운전자의 통제 한계를 측정하여 자동차 윤리위원회 권고 기준(“인간보다 안전해야 한다”)에 부합하는 성능 수준을 정의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안전성 입증을 위한 다각적 근거(Safety Argument)를 구성하고, 위험도를 계량화할 지표(KPI)와 임계값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 프로세스 구현 (SP2) – 기존 자동차 개발 프로세스(V-모델)에 시나리오 기반 검증을 통합하기 위한 과정 정립을 다룹니다. 자율주행 기능 개발에 맞춰 단계 별 시나리오 생성과 테스트를 어떻게 연결할지, 시뮬레이션 결과를 개발 피드백에 어떻게 활용할지, 학습형 시스템(머신러닝)의 특성을 어떻게 반영할지 등을 연구했습니다. 기존의 단계적 개발 프로세스에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를 접목하기 위해, 요구사항 단계에서 시나리오 정의, 설계 단계에서 안전 개념과 연계, HIL/SIL/VIL 등의 다양한 수준의 시뮬레이션 활용, 시나리오 데이터의 지속적 활용과 피드백 루프 등이 강조되었습니다. 또한 SAE 레벨이나 ODD의 범위에 따라 프로세스에 유연성을 두되, 일정 수준 이상 체계화를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 테스트 및 도구 체인 (SP3) – 실험실, 시뮬레이터, 테스트 트랙, 실제 도로 등 다양한 시험 환경에서 시나리오 테스트를 실행하고 결과를 수집·평가하는 부분입니다. PEGASUS는 테스트 시나리오 사양 데이터베이스 구축, 테스트 자동화 도구 인터페이스, 시나리오 재현을 위한 레퍼런스 요소 등을 개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 DB에 저장된 케이스를 불러와 시뮬레이션 실행하고 결과를 기록하는 스크립트, 실차 테스트 시나리오를 구현하기 위한 로봇 운전자 또는 가상 표적(Virtual Target) 활용, 여러 플랫폼 간 결과를 종합 분석하는 툴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또한 산업계 공통 포맷과 표준을 활용하여 (ASAM OpenDRIVE/OpenSCENARIO 등) 시나리오와 환경을 기술하고, 다양한 시뮬레이터 간에 시나리오를 교환 가능하도록 한 것도 특징입니다. PEGASUS 결과물로서 공개된 예시 시나리오들과 도구 체인은 이후 업계와 학계에서 널리 참고되어, 자율주행 검증 연구의 사례 표준(de-facto standard) 역할을 했습니다.
PEGASUS 방법론의 핵심 구성 요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나리오 데이터베이스 및 분류체계: 앞서 설명한 6계층 모델과 기능/논리/콘크리트 시나리오 분류를 활용해 체계적인 시나리오 카탈로그를 구축합니다. PEGASUS는 고속도로 자동운전(HAD) 기능을 사례로 약 20여개의 대표 기능적 시나리오(예: 차량 끼어들기, 앞차 급정거, 공사구간 차선합류 등)를 도출하고, 이를 세분화하여 수백 개의 논리적 시나리오로 분류한 뒤, 전수조합이나 통계적 기법으로 수만 개 이상의 콘크리트 시나리오를 생성했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 DB는 개발자나 시험자가 위험도를 기준으로 쿼리하거나, 새로운 시나리오를 추가하면서 지속적으로 관리됩니다.
-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 프레임워크: 시나리오 DB에서 시험할 케이스를 선택하고, 가상시험(시뮬레이션)과 물리시험(차량 테스트)을 연계하여 수행하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시나리오 선택은 임의 추출이 아니라 테스트 목적에 따른 전략적 선정을 따르는데, PEGASUS에서는 전문가 판단과 통계적 커버리지 기준을 조합하여 중요한 사례 위주로 테스트 세트를 구성했습니다. 예컨대 6계층 모델로 분류된 시나리오들 중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합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중요하지 않은 조합은 생략하여 관리 가능한 규모로 시나리오 수를 줄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논리적 시나리오마다 수십~수백 개의 콘크리트 시나리오를 생성해 시뮬레이션으로 실행하고, 그 중 결과가 경계값에 가까운 일부는 시험장 주행으로 검증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통해 시뮬레이션-테스트트랙-실도로에 걸친 일관된 검증체계를 확보했습니다.
- 평가 지표와 테스트 품질 기준: PEGASUS는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안전성 입증 여부를 판단할 품질 기준을 정의하려 시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Criticality를 나타내는 지표 (잔여위험도, TTC 등)들을 수집하여 시스템이 허용 가능한 위험수준 이하임을 통계적으로 논증하려는 접근을 연구했습니다. 프로젝트에서는 주행실험에서 수집한 각 시나리오의 위험도 KPI를 계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공/실패 기준(예: 충돌 여부, 간격 유지 한계 등)을 정립하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또한 German Ethics Commission의 권고처럼 “자동운전은 평균적인 인간 운전자보다 안전해야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인간 운전자 대비 사고 확률 비교 같은 방법도 활용되었습니다. 예컨대, 인간 운전자가 특정 시나리오(차량 끼어들기)에서 100번 중 2번 사고가 났다면, 자율차는 100번 중 2번 미만으로 사고가 나는지를 확인하는 식입니다 (이는 확률적으로 더 많은 시험 횟수가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지표와 기준들을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안전성 입증”을 선언할 조건을 정의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PEGASUS는 이를 위해 사고 통계, 시스템 한계, 인간 대비 우위 등의 근거를 하나로 묶는 종합 안전 논증(Safety argumentation)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해당 ODD에서 인간 평균보다 사고율이 낮고, 알려진 위험 시나리오를 모두 적절히 처리하며, 잔여 위험도도 사회가 수용할 수준 이하이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의 증거들을 모아둔 것입니다.
정리하면, PEGASUS 방법론은 단순히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는 차원을 넘어 “어떤 시나리오를, 어떻게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여, 안전을 증명할 것인가”까지 포괄하는 엔드투엔드 검증 체계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이후 자율주행 안전성 평가의 기반을 닦은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됩니다.
5. PEGASUS 툴체인과 검증 자동화
PEGASUS 프로젝트의 또 다른 성과는 자율주행 검증을 위한 툴체인(toolchain)과 자동화(automation) 기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빈번하고 테스트 시나리오도 유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자동화된 테스트가 중요합니다. PEGASUS에서는 시나리오 설계 → 시뮬레이션 실행 → 결과 분석에 이르는 과정을 최대한 자동화하기 위해, 여러 소프트웨어 도구를 연계했습니다.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시나리오 편집 및 변환 도구: 기능적 시나리오를 입력하면 정형화된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툴을 개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어로 기술된 시나리오에서 키워드를 인식해 도로 구조, 객체 속성 등을 매개변수 테이블로 추출하고, 그것을 OpenDRIVE (도로망 정의용 표준)와 OpenSCENARIO (시나리오 이벤트 정의용 표준)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입니다. 이를 통해 시나리오 작동을 사람이 일일이 코딩하지 않아도, 반자동으로 수천개의 시나리오 파일을 생성할 수 있었습니다.
- 시뮬레이션 및 거동 모델: 프로젝트 파트너였던 IPG(CarMaker), VIRES(VTD), TÜV SÜD 등은 각자의 시뮬레이터와 테스트 시스템을 PEGASUS 체계에 통합했습니다. CarMaker, VTD(Virtual Test Drive) 등의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활용하여, 생성된 시나리오를 로드하고 센서 모델 및 차량 동역학 모델과 연결해 시험을 수행했습니다. 다양한 시뮬레이터를 쓰더라도 OpenX 표준을 통해 동일 시나리오를 구동할 수 있었고, 결과는 공통 포맷으로 수집되었습니다. 또한 PEGASUS에서는 시나리오 파라미터를 자동으로 바꿔가며 여러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스크립트와,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병렬로 돌리는 HPC 활용 방안도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논문 연구 수준이 아니라 실제 산업 환경에서도 적용 가능한 시험 자동화가 가능함을 보였습니다.
- 테스트트랙 재현 및 HIL/VIL: 몇몇 시나리오는 단순 시뮬레이션 결과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EGASUS 툴체인은 하드웨어-in-the-loop (HIL)이나 Vehicle-in-the-loop (VIL) 환경에서도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시나리오를 시험장에서 재현하기 위해 로봇 운전자나 이동 표적 시스템을 활용하고, 센서 신호를 기록/재생하여 가상환경과 현실환경의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차량 시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시나리오 DB에 피드백하여 시뮬레이션 모델을 보정(Validation of simulation)하는 절차도 포함되었습니다. 이처럼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차 시험을 상호 검증함으로써, 가상시험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 테스트 효율을 개선했습니다.
- 결과 분석 및 시각화: 수백만 건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PEGASUS는 크리티컬리티(Criticality) 자동 평가 도구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시나리오별로 충돌 여부, 최소 TTC, 제동 횟수 등 지표를 추출하여 DB에 저장하고, 이를 쿼리하여 어떤 조건에서 실패가 나왔는지, 실패 빈도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분석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결과를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나리오 재생 뷰어(예: OpenScenario 플레이어)와 통계 대시보드를 활용했습니다. Synopsys 등이 개발한 테스트 관리툴 TPT도 PEGASUS 시나리오 실행에 활용되었는데, 시나리오 실행을 스케줄링하고 대시보드로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제공하여 시나리오 테스트의 관리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툴체인과 자동화 접근 방식 덕분에, PEGASUS 이후의 업계에서는 시나리오 기반 테스트가 일상적인 개발 프로세스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파트너였던 OEM들은 내부적으로 PEGASUS 개념을 적용한 시나리오 테스트 조직과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했고, Tier-1과 시험 기관들도 시나리오 서비스를 상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TÜV SÜD는 PEGASUS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사를 위한 시나리오 기반 안전성 평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자사의 proving ground에서 표준화된 시나리오를 실행하여 자율 주행차의 성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실제 적용 사례와 로드맵 그리고 ISO21448(SOTIF), ISO2626(기능안전), ISO/PAS 8800(AI안전) 과 페가수스와의 관계 등에 대해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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